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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

‘북위 51°’는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해 착수한 오픈 프로젝트였다.
주인공 데이먼 (Damon) 역의 모리츠 폰 제델만 (Moritz von Zeddelmann)은 제작 초기에 작가 겸 감독 그리고리 리히터 (Grigorji Richter)에게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정을 내비쳤다.
당시만 해도 아무 것도 없는 백지장 같은 상태였다. 리히터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새로운 촬영 장비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캐논 5D 마크 II DSLR을 몇 달 써보니 만족스러워 이걸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리히터는 이 프로젝트에 관심 이상의 열정이 있었다. 그는 사전준비 과정에서 소행성의 위협을 다룬 ‘소행성: 좋은 것, 나쁜 것, 암울한 것’ (Asteroids: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이라는 BBC 다큐멘터리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동시에 불안했다. “소행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지만, 방송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새 영화의 주제를 찾은 것은 수확이었다.

프로젝트는 당초 3개월의 짧은 제작기간과, 10명 안팎의 제작진과 함께 소규모로 진행하려는 계획으로 2010년 시작되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출연진과 제작진을 포함해 2,500명이 넘는 인력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리히터는 원래 계획했던 이야기를 확장시켜 리허설과 즉흥 연기를 통해 주인공 데이먼을 키워나갔다. 폰 제델만은 2010년 봄, 첫 촬영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25페이지에 불과한 스크립트에 대화는 한 줄도 없었지만, 데이먼의 전기는 70페이지에 달했죠.” 감독의 의도는 제델만으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스스로, 유기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거였다.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었죠. 진행하면서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채워져 나갔습니다.”라고 리히터는 말했다.

일부 배우들도 리히터만의 특별한 제작방식과 즉흥연기에 대한 선호에 대해 언급했다. 리처드 교수역의 스티브 낼론 (Steve Nallon)은 창조라는 측면에서 그 방법이 극단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했다. “리히터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일하더군요. 촬영 땐 먼저, 그와 배우들이 대화를 통해 촬영 장면에 대한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찾은 뒤,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가로등’을 세우는 것처럼, 무언가 결정하는 순간은 정해놨지만, 실제로 대본은 배우들에게 맡겼어요. 켄 로치 (Ken Loach) 같은 사람들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초자연주의와, 상업영화의 통제된 현실 사이의 중간지점이라고나 할까요.”

주인공 데이먼역을 준비하기 위해 제델만은 캐릭터 속에 푹 빠져들었다. “데이먼에 대해선 전적으로 즉흥연기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개성 있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리히터와 상의했고, 촬영기간 내내 데이먼이 되기로 했습니다. 데이먼이 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제작진에게도 제 이름이 데이먼이라고 말했습니다. 소행성 연구에 푹 빠졌고, 최대한 많은 면을 데이먼에게 붙이려고 했어요. 메소드 연기까지는 아니고, 그냥 살아남아서, 최대한 좋은 연기를 하려고 한 것뿐이죠.”

촬영 자체도 거의 100% ‘게릴라 촬영’이었다. 비용을 줄여가면서 현장의 열정적이면서 시네마 베리떼적 스타일(다큐멘터리적인 수법을 이용한 영화)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촬영감독인 제임스 킨스만 (James Kinsman)이 카메라맨으로 뛰었다. 촬영 팀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찍어가면서 온 런던 시내와 타워브릿지, 워털루 기차역, 피카딜리 서커스 같은 랜드 마크를 누볐다. 제작팀은 최대한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허가를 얻으려고 했지만 독립영화라면 그렇듯,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제델만은 이렇게 회상한다. “정말 거친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되네요. 저도 어렸을 땐, 나이를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는 마법처럼 탄생한 것 같아요.”

포스트 프로덕션 자문을 맡은 스테판 바커 (Stephen Barker)도 이러한 접근이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고 말한다. “제작진이 ‘게릴라식’ 촬영법을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명소에서 찍은 장면들과 로케이션은 정말이지 인상적이었고, 사실은 인도의 세자르 카푸르 (Shekhar Kapur) 감독이 ‘게릴라식 영화제작법’을, 구조화되고 일정에 맞춘 촬영보다 훨씬 좋아한다고 말했던 때가 생각났죠.”

한 번은 리히터와 제작진이 옥스퍼드가 근처 미국 대사관 밖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준비하는 사이 대사관 직원이, 의심스런 배낭을 멘 남자가 수류탄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해 버린 것. 6명이나 되는 경찰이 출동했고 촬영 중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나중에 경찰 한 명은 자신이 쓴 스크립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제작진은 런던 사우스뱅크의 버려진 고층 건물, 킹스리치 타워에서 촬영하면서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이 곳은 런던을 덮치는 소행성을 보기 위해 데이먼이 고층건물 지붕까지 기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장소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곳이다! 높이가 110m나 되어 강의 남쪽에는 그보다 높은 건물이 없고 런던 중심가까지 내려다 보였다. 하지만 파노라마 같은 장면이 가능한 만큼 위험이 도사렸다. 리히터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는 사방이 막힌, 완전히 텅 빈 곳으로 노숙자, 마약 중독자들이 불법 거주지로 쓰고 있었죠. 거기선 여자들이 폭행당한다는 소문도 돌았으니까요. 경찰도 위험하다고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당초 계획은 엑스트라 6명과 장비를 가득 실은 밴을 포함해 14명의 촬영 팀이 자정쯤 타워에 올라가는 거였다. 1층에서 준비하는 와중에, 건물 경비원은 수상쩍은 와이어와 장비가 가득한 배낭을 멘 음향기사 자심 재퍼 (Jassim Jaffer)가 건물 옆 발판사다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몇 분 되지 않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테러부대가 제작진을 포위했고 프로듀서 알렉스 소와브니 (Alex Souabni)는 당시의 혼란과 공포감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이렌이 울리고 우리 쪽으로 헤드라이트가 비췄죠. 손을 벽에 대라고 고함을 치더군요.” 경찰은 제작진을 알몸 수색해서 리히터의 지갑에서 몇 개의 수갑 열쇠와 현금 1만 달러를 찾아냈다. 물론 촬영을 위해 만든 가짜 돈이었지만 어느 정도 소란이 가라앉고 나자, 경찰은 제작진에게 그 곳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리히터는 굴하지 않고 다시 새벽 4시에 촬영감독과 주인공만 데리고 타워로 돌아왔다. 31층에 달하는 건물을, 핸드폰 조명에만 의지해 올라가 결국 해 뜨기 불과 30분 전에야 지붕에 도착했다. 제델만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정말 경치 좋더군요. 필요한 장면은 다 찍고 다시 내려갔죠. 건설현장 인력처럼 보이려고 반사조끼를 입고 있었던 덕에 ‘측정 장비’를 손에 들고 당당히 정문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면으로, 지구가 곧 소행성과 충돌한다는 소식이 피카딜리 서커스의 스크린에 방영되고 수 천 명 구경꾼들이 패닉에 빠지는 장면은, 전체 제작 과정에서 물량과 기술적인 면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제작진은 200명의 엑스트라와 함께 촬영하겠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오픈 캐스팅에는 1000명 넘는 인원이 몰렸다. 촬영이 시작되자 더 많은 인파가 닥치는 바람에 2000명이 넘어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가장 대규모 촬영을 감행한 영화로 남게 됐다. 엑스트라들이 길목을 막은 상황이라 광장은 정체됐다. 웨스트민스터 시의회 의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차가 다닐 수 있게 제작진이 엑스트라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촬영을 곧 중단시키겠다고 협박할 지경이었다.

저예산 영화였지만 스턴트 코디네이터와 시각효과 자문을 위해 참가한 그렉 파월 (Greg Powell), 마크 허칭스 (Marc Hutchings) 같이 재능이 뛰어난 이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다. 파월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서 ‘해리포터’, ‘007’,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최고의 작품에 참가한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경험이 있으며, 허칭스도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신들의 전쟁’과 곧 개봉될 ‘지 아이 조 2: ‘리탤리온’ 같은 다양한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담당한 이력이 있다.

파월은, 리히터와 소와브니가 찾아와 스턴트 장면에 대해 열의에 차서 설명하자 감복해 제작에 참여하기로 했다. “젊은 감독치고는 아는 것이 아주 많더군요.” 파월이 말했다. “현장에 가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고, 오픈 마인드에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영화 ‘북위 51°’는 2010년 제작에 착수할 당시 누구도 꿈꾸지 못한 것을 해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영화제작자와 제작진 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도시 전체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위력적인 실체를 담아낸 드라마로 진화했다. “이 영화엔 고유한 무언가가 있죠.” 리히터는 말한다. “제 삶에서 정말, 큰 부분이 되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죽기 전까지는 제가 영화를 완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